한눈에 보는 면의 역사
① 지금까지 나온 가장 오래된 국수는 약 4,000년 전 중국 칭하이성 라자 유적의 기장 국수입니다.
② 서양의 첫 '삶은 반죽' 기록은 3~5세기 『예루살렘 탈무드』, 시칠리아 파스타 생산 기록은 1154년입니다.
③ 우리나라 국수의 첫 기록은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입니다.
④ 밀은 동쪽으로, 기장은 서쪽으로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를 따라 오갔습니다.
비 오는 날 수제비를 끓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반죽을 물에 넣어 끓여 먹었을까요? 동양의 국수와 서양의 파스타는 왜 닮았을까요? 16년 동안 학생들과 글을 읽어 온 습관대로 자료를 하나씩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 글은 기록을 토대로한 가설입니다.
국수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2005년 10월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놀라운 논문이 실렸습니다. 중국 칭하이성 황하 상류의 라자(喇家) 유적에서 엎어진 채 진흙에 밀봉된 그릇이 발견됐고, 그 안에 가늘고 긴 국수가 남아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1]. 이 마을은 약 3,950년 전 지진과 홍수로 한꺼번에 묻혔습니다 [2].
재료는 밀이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기장과 조로 만든 국수라고 분석했습니다 [1]. 다만 잡곡만으로 이런 면을 뽑기 어렵다며 재료 판정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자도 있습니다.
문헌으로는 중국 후한(25~220년) 시대 기록이 가장 이릅니다 [3]. 당시 국수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습니다. 밀가루 반죽 음식은 모두 '병(餠)'이라 불렀고, 국물에 끓인 반죽은 '탕병(湯餠)'이라 했습니다.
유럽의 파스타는 언제부터
서양에서도 면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고대 로마에는 얇게 민 반죽 '라가눔(laganum)'이 있었고, 이 말은 오늘날 라자냐로 이어집니다. 3~5세기 『예루살렘 탈무드』(베이차 1:9)에는 '이트리움'이라는 삶은 반죽이 나옵니다 [4].
결정적인 기록은 1154년에 나옵니다. 아랍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시칠리아 왕 로제르 2세에게 바친 지리서에 시칠리아가 말린 면을 만들어 수출한다고 적었습니다 [4]. 1279년 제노바 병사의 재산 목록에는 마카로니 바구니가 등장합니다 [5].
마르코 폴로가 국수를 가져왔다?
널리 퍼진 이 이야기는 1929년 10월 미국 파스타 업계지 『마카로니 저널』에 실린 홍보용 꾸민 이야기에서 시작됐습니다 [6]. 마르코 폴로가 태어나기 전인 1154년에 이미 시칠리아 파스타 기록이 있습니다.
동서양 면의 역사 연표
| 시기 | 지역 | 기록·유물 |
|---|---|---|
| 약 4,000년 전 | 중국 칭하이 | 라자 유적 기장 국수 [1] |
| 25~220년 | 중국 | 후한 시대 첫 문헌 기록 [3] |
| 3~5세기 | 팔레스타인 | 탈무드의 삶은 반죽 '이트리움' [4] |
| 6세기 | 중국 북위 | 『제민요술』의 떼어 넣는 반죽 '박탁' [7] |
| 1123년 | 고려 | 『고려도경』 국수 기록 [8] |
| 1154년 | 시칠리아 | 알 이드리시의 말린 면 수출 기록 [4] |
| 1450년경 | 조선 | 『산가요록』 국수 조리법 [9] |
우리나라 국수는 왜 메밀이었을까
『고려도경』에는 고려 사람들이 여러 음식 중 국수를 으뜸으로 쳤다는 내용과 함께, 밀이 귀해 큰 잔치가 아니면 먹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8].
밀이 귀하니 사람들은 땅이 내주는 재료를 썼습니다. 『고사십이집』에는 국수는 본래 밀가루로 만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8]. 황하 상류에서는 기장으로, 시칠리아에서는 단단한 듀럼밀로, 한반도에서는 메밀과 녹두로 면을 만든 셈입니다.
국수보다 수제비가 먼저
긴 면발보다 반죽을 떼어 끓이는 수제비 같은 음식이 먼저였다고 봅니다. 반죽을 가늘고 길게 늘이려면 숙련이 필요하지만, 떼어 넣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6세기 북위의 농서 『제민요술』에는 반죽을 작게 떼어 끓는 물에 넣는 '박탁(餺飥)'이 실려 있습니다 [7]. 오늘날 수제비와 거의 같은 음식입니다. 6세기 『제민요술』에 등장한 박탁이라는 이름은 16세기 조선의 언어 자료에서 수제비에 해당하는 말로 설명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의 수제비 계열 음식으로는 운두병(雲頭餠)이 있습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밀가루에 다진 고기와 양념을 넣어 되직하게 반죽한 뒤, 닭을 삶은 장국에 떠 넣어 익히는 조리법이 전해집니다 [14].
음식에 원형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입맛에 맞게 바꿔 해 먹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음식은 얼마든지 변형됩니다. 반면 명절 떡처럼 잘 바뀌지 않는 음식도 있습니다. 제천 행사나 제사, 차례에 올리는 음식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음식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그 음식은 개인의 추억이 되고, 나아가 집단 문화의 계승으로 이어집니다.
밀가루 반죽을 끓는 물에 떼어 넣던 단순한 수제비도 시간이 흐르며 모습을 바꿨을 것입니다. 반죽을 납작하게 밀어 칼로 썰어 끓이는 칼국수가 생겼을 것이고, 칼로 써는 것보다 일정한 두께로 편하게 만들어 낼 방법도 궁리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특이한 방법 하나가 음식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반대 증거도 있습니다. 라자 유적의 4,000년 전 국수는 이미 가늘고 길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곳에서 수제비가 먼저였다"가 아니라 "반죽을 떼어 끓이는 방식이 면 음식의 초기 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합니다.
파미르에서 흩어진 음식 문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입니다. 이 일대에 살던 사람들이 흩어지며 음식 문화를 이어 갔고, 가는 곳마다 그 땅의 재료로 다르게 발전시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직접 그려 본 면의 길은 맨 위 지도와 아래 표에 담았습니다.
| 지역 | 면 문화와 재료 |
|---|---|
| ① 라자(황하 상류) | 약 4,000년 전 기장·조 국수 [1] |
| ② 한반도 | 밀이 귀해 메밀·녹두 국수 [8] |
| ③ 시칠리아 | 듀럼밀로 만든 말린 파스타 [4] |
| ④ 팔레스타인 | 탈무드의 삶은 반죽 '이트리움' [4] |
| ⑤ 인더스 | 산악 회랑 남쪽 갈래, 밀·보리 전파 경로 [10] |
| ⑥ 베가시(카자흐스탄) | 기원전 2300년경 밀·기장 공존 [11] |
확인된 사실도 이 방향과 만납니다. 연구자들은 알타이에서 파미르를 거쳐 힌두쿠시로 이어지는 산악 지대를 '내륙아시아 산악 회랑'이라 부르며, 이 길을 따라 기원전 8천년기~2천년기에 밀과 보리가 동쪽으로, 기장이 서쪽으로 옮겨 갔다고 봅니다 [10]. 카자흐스탄 베가시 유적에서는 기원전 2300년 무렵 유목민이 밀과 기장을 함께 가지고 있었던 흔적이 나왔습니다 [11].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① 출발지인가, 교차로인가. 고고학계는 파미르를 인류의 출발지보다 동서 문명이 오간 교차로로 보는 편입니다.
② 고산지대 정착 시기. 동부 파미르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때는 약 2만~1만 2천 년 전으로 추정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12].
③ 시간의 간격. 인류의 이동은 수만 년 전, 국수의 등장은 약 4,000년 전이어서 둘을 곧바로 잇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만 '출발지'든 '교차로'든, 파미르 일대가 동서 면 문화를 이어 준 중심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국수는 중국이 발명했나요?
가장 오래된 국수가 나온 라자는 오늘날 중국 땅이지만, 이 국수를 만든 사람들은 중원(황하 중·하류 평원)에서 농사짓던 화하(한족의 원류)가 아닌 황하 상류의 제가문화(齊家文化) 사람들이었습니다 [2]. 지금의 국경으로 옛 음식의 주인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면이 여러 지역에서 따로 생겨났다고 보는 연구자도 많습니다.
Q2. '국수'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요?
정확한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옛 문헌에는 '물에서 움켜쥔다'는 뜻의 한자 국수(掬水)로 적은 사례가 있습니다 [13].
수제비 한 그릇에서 시작한 질문이 4,000년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면은 한곳에서 출발해 퍼져 나갔을까요, 아니면 여러 곳에서 따로 태어나 길 위에서 만났을까요?
참고문헌 (References)
[1] Lu, H. 외, "Culinary archaeology: Millet noodles in Late Neolithic China", Nature 437, 2005-10-13,
https://doi.org/10.1038/437967a
[2] 地理学报, 「喇家遗址 제가문화층 지진·홍수 퇴적층 광여기루미네선스 연대 측정」, 2013, Vol.68(5),
https://www.geog.com.cn/CN/10.11821/xb201305005
[3] National Geographic, "4,000-Year-Old Noodles Found in China", 2005-10-12,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4-000-year-old-noodles-found-in-china
[4] Serventi, S.·Sabban, F., 『Pasta: The Story of a Universal Foo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탈무드·알 이드리시 기록 인용)
[5] Lapham's Quarterly, 이탈리아 파스타의 역사, (접속: 2026-10-12)
https://www.laphamsquarterly.org/node/10234
[6] Tampa Bay Times, "Marco Polo and the myth of pasta", 1997-10-09,
https://www.tampabay.com/archive/1997/10/09/marco-polo-and-the-myth-of-pasta
[7] 가사협(賈思勰), 『제민요술(齊民要術)』, 544년경, 병법(餠法) 편 박탁 조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수」, 1995 집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369
[9] 지역N문화(한국문화원연합회), 「국수」, (접속: 2026-10-12)
https://ncms.nculture.org/food/tag/byid/4359
[10] Stevens, C. 외, "Between China and South Asia: A Middle Asian corridor of crop dispersal", The Holocene, 2016,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5125436
[11] Penn Museum, Frachetti, M., "Seeds for the Soul", 2011-03-19,
https://www.penn.museum/collections/videos/video/999
[12] Archaeological Research in Asia, "Occupation of highland Central Asia: New evidence from Kurteke rockshelter, Eastern Pamir", 2023,
https://doi.org/10.1016/j.ara.2023.100443
[13] 아주경제, 「"고려시대 이전부터 국수 먹어"」(국립민속박물관 보고서), 2019-08-14,
https://ajunews.com/view/20190814084921205
[1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수제비」(『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운두병 조리법 인용), (접속: 2026-10-12)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16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