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핵심
① 1602년 8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주식을 공모했고, 1,143명이 청약했습니다. [2]
② 공모 5년 뒤인 1607년, 공증 문서에 선도계약이 등장합니다. [5]
③ 1610년 2월 27일 공매도를 금지하는 포고령이 나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증권시장 규제입니다. [7]
21년간 돈이 묶이는 회사에서 시작됐습니다
주식의 출발점은 투자가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1602년 3월 20일 설립된 VOC의 헌장 제7조는 출자자가 10년과 20년이 지난 뒤에야 돈을 뺄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지분을 남에게 넘기는 것만 가능했습니다. [1]
21년 만기 적금인데 중도해지가 안 됩니다. 대신 통장은 팔 수 있습니다. 그럼 통장 시장이 생깁니다. 유통시장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공모 조건도 파격이었습니다. 헌장 제10조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식을 살 수 있다고 했고, 최소·최대 금액 제한이 없었습니다. 양도 절차는 헌장 본문이 아니라 출자금 등록부 첫 장에 한 줄로 덧붙여졌습니다. [2]
VOC 헌장은 법인가 허가증인가
헌장을 발급한 곳이 정부이다 보니, 제7조를 국가가 돈을 묶어둔 규제로 읽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 층으로 나눠 보면 분명해집니다.
형식 — 국가 문서가 맞습니다
1602년 헌장은 연합 네덜란드 총회(States General)가 부여했습니다. [3] 설립도 자발적 합병이 아니었습니다. 올던바르네벌트와 오라녀 공 마우리츠가 협상해 선행회사들을 묶었고, 분열된 경쟁이 스페인·포르투갈에 맞선 힘을 약화시킨다는 판단이 배경이었습니다. [4]
성격 — 법률이 아니라 특허장입니다
원문의 이름은 옥트로이(Octrooi)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이 아니라, 회사 하나에 주어진 허가증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상법이 아니라 사업 면허에 가깝습니다.
운영에서도 총회는 실무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 서신 왕복에만 최소 1년 반이 걸린 사정도 있었습니다. [4]
내용 — 제7조는 규제가 아니라 유인책입니다
헌장을 쓴 사람들은 21년이라는 기간이 투자를 망설이게 만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0년 뒤 총결산을 작성해 회사 상황을 공개하고, 주주가 원하면 돈을 돌려달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2]
돈을 묶은 것은 21년 독점 기간이고, 제7조는 그것을 10년으로 줄여준 완화 조항이었습니다.
그마저 부족하다고 본 쪽은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헌장 부여일인 3월 20일과 주주명부 개설일인 8월 1일 사이에, 이사들이 등록부 첫 장에 양도 조항을 직접 덧붙였습니다. [2]
| 층위 | 결정 주체 | 내용 |
| 특허장 발급 | 총회 (국가) | 합병 주도 · 21년 독점 |
| 제7조 10년 총결산 | 헌장 기초자 | 투자 유인을 위한 완화 |
| 양도 허용 | 회사 이사진 | 국가 문서 밖에서 추가 |
※ 출처 [1][2][3][4]
주식 용어 세 가지 — 공매도·선도계약·옵션
공매도 — 빌려서 먼저 팔기
친구에게 만화책을 빌려 1만 원에 팝니다. 한 달 뒤 6천 원에 사서 돌려주면 4천 원이 남습니다. 값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다만 손실 구조가 비대칭입니다. 주식을 사는 사람의 최악은 전액 손실이지만, 공매도는 가격에 천장이 없어 손실도 한계가 없습니다.
선도계약 — 미래의 값을 지금 약속하기
여섯 달 뒤에 정해진 값으로 주식을 넘기겠다는 약속입니다. 배가 아시아에서 언제 어떤 상태로 돌아올지 모르던 시대에, 이 약속 자체가 값어치를 가졌습니다.
옵션 — 물건이 아니라 권리를 사기
정해진 값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만 사둡니다. 유리하면 쓰고, 불리하면 버립니다. 살 권리가 콜, 팔 권리가 풋입니다.
400년 연표 한눈에 보기
| 시점 | 사건 | 남긴 것 |
| 1602. 8 | VOC 공모, 청약자 1,143명 | 공개 주식회사 |
| 1603~1607 | 연간 최대 200건 거래 (자본의 6~7%) | 얇은 시장 |
| 1607 | 공증 문서에 선도계약 등장 | 파생상품 |
| 1609 | 르메르의 비밀 조직, 공매도 공격 | 최초의 베어 레이드 |
| 1610. 2. 27 | 공매도 금지 포고령 | 최초의 증시 규제 |
| 1610 | VOC 첫 배당 지급 | 주주 권리 |
| 1611. 8 | 암스테르담 거래소 건물 개장 | 상설 거래 장소 |
| 1630~1650 | 현대적 증권시장으로 발전 | 유동성·가격 발견 |
| 17세기 중반 | 실물 없이 손익만 정산 (렌스콘트르) | 청산 제도 |
| 1722~1723 | 결제 규정 정비, 신문에 시세 게재 | 공시 제도 |
※ 출처 [2][5][6][7][8][9][10][13]
파생상품이 등장한 배경 — 제도의 빈틈
탐욕이 빨랐던 게 아닙니다. 제도의 빈틈이 컸습니다. 원인은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명의개서가 지독하게 번거로웠습니다. 주식을 넘기려면 매수자와 매도자가 함께 회계원 앞에 출석해야 했고, 이사 두 명의 서면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2] 이 절차가 오히려 차액만 주고받고 끝내는 관행을 부추겼고, 이것이 17세기 중반 표준이 된 렌스콘트르 결제의 토대가 됩니다. [8]
둘째, 실물이 빠지자 없는 것도 팔 수 있게 됐습니다. 명의를 옮기지 않고 손익만 정산하는 순간, 계약은 실물에서 분리됩니다. 르메르가 주식을 빌리는 대신 선도계약을 쓴 것도 회계원을 자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습니다. [7]
셋째, 시장이 너무 얇았습니다. 1603년부터 1607년까지 암스테르담 상관의 연간 거래는 최대 200건, 자본의 6~7%에 그쳤습니다. [9] 하루 한 건이 안 되는 시장에서는 종이 계약이 실물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넷째, 8년간 배당이 없었습니다. 첫 배당은 1610년입니다. [6] 배당이 없으면 수익원은 가격 차익 하나뿐입니다.
여기서 주의 — 규제와 우회로
번거로운 절차를 없애려는 시도가 더 복잡한 도구를 낳았습니다. 규제가 생기면 우회로도 함께 생긴다는 구조는 오늘날 금융 규제 논의에서도 반복됩니다.
사건별로 무슨 일이 있었나
1609년 — 쫓겨난 이사의 반격
이사크 르메르는 암스테르담 상관 최대 투자자로, 명목 8만 5천 길더를 청약했습니다. [11] 1605년 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1609년 동업자들과 선도계약을 이용해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파는 조직적 공격을 벌였습니다. [12]
문제는 계약이 아니라 그다음이었습니다. 이들은 주식이 거래되던 다리와 예배당에서 회사에 관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르메르는 이미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내세워야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7]
예측과 조작은 다릅니다. 가격이 내릴 것이라 판단하는 일은 자유고, 거짓말로 내리게 만드는 일은 범죄입니다. 이 둘이 뭉뚱그려지는 것이 공매도 논쟁의 오래된 함정입니다.
1610년 — 최초의 규제, 그리고 첫 배당
회사는 정부를 움직였습니다. 청원서는 가담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이런 행위가 투자자 특히 과부와 고아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7] 실제 손실을 보던 쪽은 대주주와 이사회였지만 전면에 세운 것은 약자였습니다.
1610년 2월 27일 포고령이 공포됐습니다. 다만 발효는 두 달 뒤였고, 르메르를 무너뜨린 것은 법이 아니었습니다. 계획이 알려지자 주가가 더는 내려가지 않았고, 회사가 주주명부에서 그의 계좌를 막아 계약 이행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7]
같은 해 회사는 첫 배당을 지급했습니다. [6] 설립 8년 만이었습니다. 공격이 뜻하지 않게 전체 주주의 몫을 끌어올린 셈입니다.
1630~1650년 — 시장이 완성되다
암스테르담 시장 연구의 결론은 이 시기에 현대적 증권시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매우 유동적이 됐고 가격 발견이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거래자는 언제든 시장가에 가까운 값으로 사고팔 수 있었습니다. [10]
파생상품이 시장을 망친 것이 아니라 작동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 시기의 역설입니다.
1720년 붕괴, 1723년 시세 공시
17세기 중반이 되자 기한부 거래와 옵션은 실물 인도 없이 결제일에 손익만 정산하고 다음 기일로 이월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산일은 1년에 네 번이었고, 그날 대리인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거래를 정리했습니다. [13]
그리고 1720년 9월 붕괴가 옵니다. 늦어도 1722년에는 결제에 관한 상세 규정이 등장했고, 1723년 7월부터 신문이 선도거래 가격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청산 규정에 담긴 분쟁 해결 조항은 붕괴 당시 계약 파기가 속출했음을 보여줍니다. [14]
도구 등장 → 시장 성장 → 붕괴 → 계약 파기 → 그제서야 청산 규정과 가격 공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외파생상품 청산 제도가 강화된 순서와 같습니다.
정리 — 확실한 것과 남는 논쟁
확실한 것은 순서입니다. 긴 특허 기간이 유통시장을 낳았고, 번거로운 절차가 차액 정산을 낳았고, 차액 정산이 공매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모두 불편을 피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30개국 자료를 분석한 2013년 연구는 공매도 금지가 유동성을 해쳤고 가격 발견(사고파는 사람이 부딪혀 값이 정해지는 과정)을 늦췄으며 주가를 떠받치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15] 반면 한국은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이유로 2023년 11월 금지했다가 2025년 3월 31일 재개했습니다. 재개와 함께 전산 감시 체계가 가동되고 개인 담보비율이 105%로 조정됐습니다. [16]
① 사료의 한계. 17세기 기록은 분쟁이 생긴 거래에 치우쳐 남아 있습니다. 평온한 거래는 문서를 남기지 않습니다.
② 시기의 한계. 이 글의 서술은 1602~1723년 암스테르담에 한정됩니다. 18세기 이후는 다른 자료가 필요합니다.
③ 비교의 한계. 400년 전 사례가 오늘의 정책 판단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구조가 닮았다는 것과 결과가 같다는 것은 다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주식은 정말 1602년에 처음 생겼나요?
지분 개념은 더 오래됐습니다. 다만 누구나 살 수 있고, 회사를 해산하지 않고도 넘길 수 있으며, 그것이 상시 거래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첫 사례가 VOC입니다.
Q2. 공매도는 그때도 불법이었나요?
1610년 2월 27일 포고령 이전에는 금지 규정 자체가 없었습니다. 규제가 사건보다 늦게 만들어졌습니다.
Q3. 선물과 선도계약은 다른가요?
둘 다 미래에 정해진 값으로 거래하는 약속입니다. 거래소에서 규격을 통일해 다루면 선물, 당사자끼리 조건을 정하면 선도계약입니다.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주로 쓰인 것은 선도계약이었습니다. [5]
참고문헌 (References)
[1] J. de Jongh, "Shareholder Activism at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1622-1625", SSRN,
https://www.shareholderforum.com/access/library/20100110_jongh.pdf
[2] Lodewijk Petram, "The world's first IPO",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 2020-10-15,
https://www.worldsfirststockexchange.com/2020/10/15/the-worlds-first-ipo/
[3] Universiteit Leiden Student Theses, "Imperium in Imperio? Sovereign Powers of the First Dutch West India Company",
https://studenttheses.universiteitleiden.nl/access/item:2631849/view
[4] University of Massachusetts Dartmouth, "The VOC,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1602-1799",
https://bpb-us-w2.wpmucdn.com/sites.umassd.edu/dist/4/628/files/2017/02/thevoc.pdf
[5] Universiteit Leiden Scholarly Publications, "Courting Conflict: Managing Dutch East and West India Company Disputes",
https://scholarlypublications.universiteitleiden.nl/access/item:2907003/view
[6] Beursgeschiedenis (네덜란드 거래소 역사 아카이브), "VOC: the start of global share trading",
https://www.beursgeschiedenis.nl/en/moment/voc-the-start-of-global-share-trading/
[7] Lodewijk Petram, "Going short in 1608",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 2020-11-27,
https://www.worldsfirststockexchange.com/2020/11/27/going-short-in-1608/
[8] Geoffrey Poitras, "Isaac Le Maire and the early trading in Dutch East India Company shares", Simon Fraser University,
https://www.sfu.ca/~poitras/ch2_lemaire.pdf
[9] O. Gelderblom, A. de Jong, J. Jonker, "The VOC Insurance Contract of 1613", Yale University, 2014-02,
https://economics.yale.edu/sites/default/files/gelderblom_de_jong_and_jonker_on_voc_insurance_february_2014.pdf
[10] Lodewijk Petram,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 1602-1700」, 박사학위논문, University of Amsterdam, 2011,
https://dare.uva.nl/document/2/85961
[11] Lodewijk Petram,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4 (JSTOR 수록본),
https://www.jstor.org/stable/10.7312/petr16378
[12] O. Gelderblom, A. de Jong, J. Jonker, "The First Bear Raid and Squeeze: Isaac Le Maire and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SSRN,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6167147
[13] Geoffrey Poitras, "The Early History of Option Contracts", Simon Fraser University,
https://www.sfu.ca/~poitras/heinz_$$.pdf
[14] Financial History Review (Cambridge University Press), "From free-for-all to self-governing monopoly: the Amsterdam Stock Exchange, 1796-1940",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financial-history-review/article/from-freeforall-to-selfgoverning-monopoly-market-organization-and-price-information-at-the-amsterdam-stock-exchange-17961940/FAEFB168FD669571A7AB06A410E4FDCD
[15] A. Beber, M. Pagano, "Short-Selling Bans Around the World: Evidence from the 2007-09 Crisis", The Journal of Finance, 2013,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11/j.1540-6261.2012.01802.x
[16] 금융위원회, 「3월 31일부터 공매도를 전면 재개합니다」, 2025-03,
https://www.fsc.go.kr/no010101/8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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