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포도주가 일으킨 백년전쟁 — 중세 와인 무역으로 본 전쟁의 속사정
작성일 : 2026년 9월 16일
숫자로 보는 핵심
① 보르도가 속한 가스코뉴는 1154년부터 1453년까지 거의 끊김 없이 잉글랜드 왕의 영지였습니다. [1]
② 1308~1309년 한 해 동안 보르도 앞 지롱드강 하구를 지난 포도주는 102,724턴(약 85만 헥토리터)으로, 중세 기록상 최고치입니다. [2]
③ 1337년 프랑스 왕 필리프 6세가 가스코뉴 몰수를 선언하면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3]
④ 1453년 7월 17일 보르도 동쪽 카스티용 전투의 패배로 잉글랜드는 이 지역을 잃었습니다. [4]
왜 전쟁 이야기에 포도주가 나올까
백년전쟁(1337~1453)은 흔히 왕위 계승 다툼으로 배웁니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가 어머니 쪽 혈통을 내세워 프랑스 왕위를 요구했다는 설명이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교과서 한 줄 뒤에는 돈이 되는 땅을 둘러싼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그 땅이 프랑스 서남부의 가스코뉴, 그리고 중심 항구 보르도입니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블랙모어는 이 지역이 지리와 토양 조건 때문에 사실상 포도주 한 가지 상품에 기대어 살았다고 설명합니다. 포도주를 팔아 번 돈으로 식량과 생활용품을 사 오는 구조였습니다. [1]
핵심 개념 쉽게 이해하기
봉신(封臣) — "우리 집 주인인데 남의 집 세입자"
잉글랜드 왕은 자기 나라에서는 왕이었지만, 가스코뉴에서는 프랑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공작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봉신이라고 합니다. 집주인이 다른 동네에서는 세입자인 셈이라, 프랑스 왕은 언제든 "충성 의무를 어겼다"며 땅을 빼앗겠다고 압박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1337년 필리프 6세는 이 명분으로 가스코뉴 몰수를 선언했습니다. [3]
단일 상품 경제 — "석유만 파는 나라"
블랙모어는 중세 가스코뉴를 오늘날 화석연료나 광물 수출에 기대는 나라에 빗댑니다. 수출품 가격이 흔들리면 금·은이 한꺼번에 들어오거나 빠져나가 경제 전체가 요동친다는 뜻입니다. [1] 전쟁이 무역을 끊으면 이 지역은 곧바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개념을 짚는 이유는 가스코뉴가 왜 그렇게 중요한 땅이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산유국에 석유 수출길이 곧 생명줄이듯, 가스코뉴에는 포도주를 실어 나를 바닷길과 사 줄 시장이 생명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잉글랜드 왕실과의 결합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 경제적 바탕이 바로 포도주 무역이었습니다. [5] 잉글랜드 왕에게도 이 무역은 관세를 거둬 재정과 정치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5]
한 줄로 연결하면
포도주 말고는 기댈 것이 없는 땅 → 그 무역이 잉글랜드 왕실과 주민을 묶음 → 프랑스 왕의 몰수 선언은 곧 이 생명줄을 위협하는 일 → 전쟁의 불씨
핵심 연표 한눈에 보기
| 시기 | 사건 | 포도주 무역과의 관계 |
| 1152.5.18 | 알리에노르 다키텐, 앙주 백작 앙리와 결혼 [6] | 아키텐 공령이 훗날 잉글랜드 왕가로 넘어가는 출발점 |
| 1154 | 앙리가 잉글랜드 왕 헨리 2세로 즉위 [7] | 가스코뉴가 잉글랜드 왕의 영지가 됨 |
| 1308~09 | 포도주 선적량 기록 최고치 [2] | 102,724턴 |
| 1337 | 필리프 6세, 가스코뉴 몰수 선언 → 전쟁 시작 [3] | 무역 기반 자체가 위협받음 |
| 1348~49 | 흑사병 유행 [2] | 5,923턴 (14세기 최저) |
| 1451 | 프랑스, 가스코뉴 1차 점령 [4] | 주민 반발로 잉글랜드군 재입성 요청 |
| 1453.7.17 | 카스티용 전투, 잉글랜드 패배 [4] | 약 300년의 잉글랜드–보르도 관계 종료 |
※ '턴(tun)'은 포도주를 담던 큰 통 단위입니다. 선적량 수치는 세관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 연구의 추정치입니다.
숫자 읽는 법 — 10만 턴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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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만 턴
14세기 초 연평균 수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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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4
그중 잉글랜드행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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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척
1348~49년 포도주 선단 규모
|
14세기 초 보르도는 해마다 평균 8만 턴가량을 수출했고, 이 가운데 약 4분의 1이 잉글랜드로 향했습니다. 평소 수백 척이던 포도주 선단은 흑사병이 돈 1348~49년에는 74척으로 줄었습니다. [2] 흔히 "보르도 포도주는 전부 잉글랜드로 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시장은 더 넓었습니다.
여기서 주의
같은 해 수치라도 연구자와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1308~09년 최고치를 10만 4천 턴대로 적는 글도 있습니다. 이 글은 보르도 와인사 연구를 인용한 수치(102,724턴)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시간대별로 따라가는 포도주와 전쟁
1152~1154년, 결혼 한 번이 지도를 바꾸다
중세 유럽에서 땅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에게 딸린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결혼과 상속이 곧 국경선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알리에노르는 113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키텐 공령을 물려받았는데, 이 땅은 당시 프랑스 왕이 직접 가진 영지보다도 넓었습니다. [8]
알리에노르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와의 결혼이 무효가 된 지 8주 만인 1152년 5월 18일, 앙주 백작 앙리와 푸아티에에서 결혼했습니다. 결혼 무효로 되찾은 아키텐과 푸아투를 그대로 새 남편에게 가져간 것입니다. [6] 앙리가 1154년 헨리 2세로 즉위하면서 아키텐은 잉글랜드 왕의 땅이 됐습니다. [7]
쉽게 말해, 프랑스 왕의 부인이 가져왔던 거대한 땅이 이혼과 재혼을 거쳐 경쟁국 왕의 손에 들어간 셈입니다. 이때부터 잉글랜드 왕은 보르도를 다스리면서도 이 땅에 대해서는 프랑스 왕의 봉신이라는 어정쩡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2번에서 설명한 "우리 집 주인인데 남의 집 세입자" 관계가 바로 이 결혼에서 시작됐고, 약 300년 뒤 백년전쟁의 불씨가 됐습니다.
14세기 초, 세금이 흐르는 강
영국 역사 연구소 자료는 가스코뉴 사람들이 잉글랜드 왕실과의 결합을 중시한 경제적 바탕이 포도주 무역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에드워드 3세 시기에는 가스코뉴의 포도주 관세가 재정·정치 목적에 따라 자주 조정되기도 했습니다. [5] 전쟁 전에도 프랑스는 1294년과 1324년 두 차례 가스코뉴를 침공했습니다. [2]
1350~1360년대, 가격이 요동친 시장
북유럽은 맥주(에일)를 주로 마셨기 때문에 포도주는 부유층의 사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급이나 수요가 잠깐만 흔들려도 수출량이 크게 출렁였습니다. 1353년 잉글랜드가 상인들의 선매입을 제한한 법도 변동성을 키웠습니다. 흑사병 뒤 20년간 가스코뉴 화폐가 파운드화보다 강해지자 잉글랜드 구매자에게는 포도주가 비싸졌습니다. [1] 환율과 규제가 무역을 흔드는 모습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451~1453년, 보르도는 누구 편이었나
프랑스는 1451년 가스코뉴를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300년 가까이 잉글랜드 왕 아래 살아온 주민들에게 프랑스의 통치는 낯설었고, 반감을 품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452년 10월 잉글랜드 슈루즈버리 백작 존 탤벗의 군대가 오자 보르도는 성문을 열어 맞아들였습니다. [4] 포도주를 사 주던 오랜 거래 상대를 택한 셈입니다.
1453년 7월 17일, 백년전쟁을 사실상 끝낸 카스티용 전투
1453년 여름, 프랑스는 가스코뉴를 두 번째로 되찾기 위해 군대를 보냈습니다. 첫 목표는 보르도 동쪽 도르도뉴강 가의 친잉글랜드 거점 카스티용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카스티용을 포위하고 성 밖 진지를 매우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이 군대의 핵심 무기는 장 뷔로가 새로 들여온 야전 대포였습니다. [4]
탤벗은 판단을 서둘렀습니다. 프랑스군이 진지를 버리고 떠나는 줄 잘못 알고, 보병 5,000명이 도착하기 전에 기병 1,000명만 앞세워 공격했습니다. 말에서 내려 진지로 돌격한 병사들은 프랑스 대포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뒤늦게 일부 보병이 합류했지만, 프랑스군이 진지 밖으로 치고 나오자 잉글랜드군은 무너졌습니다. [4]
전투 이후 석 달의 흐름
7월 17일 · 카스티용 전투 패배, 탤벗 전사
7월 18일 · 카스티용 수비대 항복
10월 · 보르도 항복 → 가스코뉴가 프랑스로 넘어가며 전쟁 종결
※ 출처 [4]
이 전투가 전쟁을 사실상 끝냈다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전투 하루로 모든 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지휘관을 잃은 잉글랜드는 버틸 힘을 잃었고 석 달 뒤 보르도가 항복하면서 가스코뉴는 프랑스 땅이 됐습니다. [4] 1152년 결혼으로 시작된 잉글랜드 왕과 보르도의 인연, 그리고 그 위에서 번성한 포도주 무역의 시대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또 기사들의 돌격이 대포 앞에 무너진 이 장면은 전쟁의 주인공이 바뀌어 가던 시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영국에서 보르도 와인을 '클라레'라고 부르는 이유는?
클라레(claret)는 '맑은(옅은 빛깔의) 포도주'를 뜻하던 옛 프랑스어에서 왔습니다. 영어에서 이 말이 '보르도 적포도주'라는 좁은 뜻으로 쓰인 기록은 1700년 무렵부터 확인됩니다. [9] 중세의 옅은 포도주 이름이 시간이 흐르며 짙은 적포도주를 가리키게 된 셈입니다.
Q2. 무게 단위 '톤'도 포도주와 관련 있나요?
네. 영어 ton은 14세기 후반 포도주 큰 통(tun) 하나를 채우는 양을 뜻하는 말로 쓰였고, tun과 원래 같은 단어입니다. 철자가 ton으로 굳어진 것은 18세기 무렵입니다. [10]
Q3. 전쟁은 왕의 명분으로 일어날까, 경제적 이해로 일어날까?
백년전쟁만 보면 둘 중 하나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 내건 명분은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왕위 요구였고, 직접적인 계기는 1337년 가스코뉴 몰수 선언이었습니다. [3] 그런데 그 땅이 왜 끝까지 다툴 만큼 중요했는지를 따라가면 포도주 무역이라는 경제적 이해가 나옵니다. 명분은 싸움을 정당화하고, 이해관계는 싸움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 셈입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Robert Blackmore, Economic History Society, "Wine prices in Anglo-Gascon trade, c.1337-c.1460", 2018-04-11,
https://ehs.org.uk/wine-prices-in-anglo-gascon-trade-c-1337-c-1460/
[2] Jane Anson, "Pirates, plague and pillaging: Anglo-Bordeaux wine trade in the Middle Ages", 2023-03-01,
https://janeanson.com/pirates-plague-and-pillaging-anglo-bordeaux-wine-trade-in-the-middle-ages
[3] World History Encyclopedia, "Causes of the Hundred Years' War", 2020-03-05,
https://www.worldhistory.org/article/1517/causes-of-the-hundred-years-war/
[4]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Castillon", (접속: 2026-09-16)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Castillon
[5] British History Online, "The wine trade with Gascony" (Frank Sargent), (접속: 2026-09-16)
https://www.british-history.ac.uk/manchester-uni/london-lay-subsidy/1332/pp256-311
[6] Richard Cavendish, History Today, "Eleanor of Aquitaine marries Henry of Anjou", Vol.52 Issue 5, 2002-05,
https://www.historytoday.com/archive/eleanor-aquitaine-marries-henry-anjou
[7] English Heritage, "Eleanor of Aquitaine", (접속: 2026-09-16)
https://www.english-heritage.org.uk/learn/histories/women-in-history/eleanor-aquitaine/
[8] Encyclopaedia Britannica, "Eleanor of Aquitaine", (접속: 2026-09-16)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Eleanor-of-Aquitaine
[9] Online Etymology Dictionary, "claret", (접속: 2026-09-16)
https://www.etymonline.com/word/claret
[10] Online Etymology Dictionary, "ton", (접속: 2026-09-16)
https://www.etymonline.com/word/t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