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을 기준으로 본 긴 창·장궁·대포

백년전쟁의 무기 - 긴 창·장궁·대포

작성일 : 2026년 9월 17일

백년 전쟁을 기준으로 본 긴 창.장궁.대포

새 무기가 나오면 전쟁은 끝날까

백년전쟁(1337~1453)은 무기가 판도를 바꾼 대표적인 전쟁입니다. 전반에는 잉글랜드의 장궁이, 후반에는 프랑스의 대포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더 센 무기를 가진 쪽이 이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백년전쟁 이전과 이후를 함께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새 무기는 늘 전술과 지형의 도움을 받았고, 곧 상대의 대응책을 불렀습니다. 이 글은 백년전쟁을 기준점으로 삼아 그 앞뒤의 결정적 장면을 따라갑니다.

무기가 승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무기를 쓰는 방식이 승리를 만들었습니다.

두 가지 핵심

핵심 ① 무기는 전술과 짝을 이룰 때 힘을 낸다

긴 창 한 자루는 들고 싸우기 불편합니다. 하지만 수천 명이 빽빽하게 서면 뚫을 수 없는 창의 벽이 됩니다. 새 무기의 힘은 그 무기에 맞는 대형, 훈련, 지형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사리사가 좋은 예입니다. 병사는 긴 창을 두 손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에 큰 방패 대신 작은 방패를 팔에 걸었습니다. 약한 갑옷을 창의 길이로 보완한 것입니다. 이런 병사들이 가로 8줄, 세로 16줄 깊이로 빽빽하게 서도록 훈련받았고, 옆과 뒤만 보호되면 막을 수 없는 대형이 됐습니다. [5] 거꾸로 말하면 옆과 뒤가 뚫리면 약해지는 무기이기도 했습니다.

무기 함께 필요했던 것 없을 때 생긴 일
긴 창 빽빽한 대형, 평평한 땅, 옆을 지킬 병력 험한 땅에서 옆과 뒤를 공격당해 패배(기원전 197년)
장궁 좁고 질척한 전장, 중앙을 지키는 중무장 병사 궁수만으로는 적의 돌격을 막기 어려움
대포 튼튼한 진지, 대포를 지킬 병력 느린 장전 사이 적의 돌격에 노출

백년전쟁의 두 승리도 같습니다. 아쟁쿠르의 장궁병은 가운데 선 중무장 병사들 양옆에 배치됐고 [2], 카스티용의 대포는 튼튼한 진지 안에 있었습니다. [6] 무기 혼자가 아니라 무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판을 함께 짠 쪽이 이겼습니다.

핵심 ② 새 무기는 반드시 대응을 부른다

대포가 높은 성벽을 무너뜨리자 사람들은 낮고 두꺼운 흙벽을 쌓았습니다. 한쪽의 우위는 오래가지 않았고, 상대는 약점을 찾아 새로운 방어와 조직으로 답했습니다.

이 과정은 운동 경기의 전술 변화와 비슷합니다. 한 팀이 새 공격법으로 연승하면, 다른 팀들은 그 공격을 분석해 막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전쟁에서는 그 대가가 훨씬 컸을 뿐입니다. 새 대응책이 나오기까지 보통 큰 패배와 긴 시간, 막대한 비용이 들었습니다.

공격과 대응의 주고받기

긴 창의 벽 → 작은 부대로 쪼개 옆과 뒤를 치는 로마군 [7]

기사의 돌격 → 개울과 해자 뒤에 진을 친 보병 [8]

성벽을 부수는 대포 → 땅을 파고 흙을 쌓은 낮은 요새 [9]

일주일간의 대규모 포격 → 참호 속 대피호에서 버틴 뒤 올라온 수비군 [10]

그래서 "최강의 무기"라는 말은 늘 한시적이었습니다. 무기가 강할수록 상대는 더 절박하게 대응책을 찾았고, 그 대응책이 다시 다음 무기를 불렀습니다.

핵심 연표 한눈에 보기

시기 사건 · 무기 바뀐 판도
기원전 338 카이로네이아 전투 · 긴 창 사리사 [1]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도시국가를 제압
기원전 197 키노스케팔라이 전투 · 로마의 작은 부대 [7] 험한 땅에서 밀집대형이 무너짐
1302 쿠르트레 전투 · 평민 보병 [8] 기사 돌격이 보병에게 막힘
1415 아쟁쿠르 전투 · 장궁 [2] 백년전쟁 수적 열세의 잉글랜드가 대승
1453.5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 공성포 [3] 천 년 성벽이 무너짐
1453.7 카스티용 전투 · 야전 대포 [6] 백년전쟁 잉글랜드, 가스코뉴 상실
15~16세기 낮고 두꺼운 흙 요새 [9] 대포에 맞선 방어의 진화
1916.7.1 솜 전투 · 대규모 포격 [11] 포격 뒤에도 영국군 최악의 하루

※ 주황색 줄이 이 글의 기준점인 백년전쟁 속 전투입니다.

숫자로 보는 무기의 힘과 한계

창의 길이 비교 — 한 걸음 먼저 찌르는 힘

그리스 창
사리사
4~6.5m

사리사는 그리스 창의 약 두 배 길이였습니다. [1]

솜 전투의 포탄 10발 중 — 최대 3발은 터지지 않았다

회색 = 불발탄 추정치(최대 30%) [10]

숫자는 두 가지를 보여 줍니다. 긴 창처럼 무기의 작은 차이가 전장에서 큰 우위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 포격도 불발탄과 깊은 참호 앞에서 기대만큼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시대마다 달라진 무기와 전술

기원전 338년, 긴 창이 도시국가 시대를 끝내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카이로네이아에서 테베·아테네 연합군을 꺾고 그리스의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승리 요인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거짓 후퇴로 적 대열에 틈을 만들고 알렉산드로스의 기병이 파고들었다는 설명, 그리고 긴 사리사로 무장한 노련한 군대가 압도했다는 설명입니다. [1]

기원전 197년, 험한 땅에서 무너진 창의 벽

무적처럼 보이던 밀집대형은 로마에게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키노스케팔라이에서 마케도니아군은 험한 땅으로 전진했습니다. 이때 이름 모를 로마 장교가 120명 단위의 작은 부대 20개를 떼어 내 적의 옆과 뒤를 공격했습니다. [7] 무기보다 유연한 조직이 이긴 장면입니다.

1302년, 평민 보병이 기사를 이기다

쿠르트레에서 훈련받지 못한 플랑드르 수공업자 민병대가 프랑스 기병을 물리쳤습니다. 이들은 개울과 해자로 둘러싸인 땅에 진을 쳐 기병의 빠른 돌격을 막았습니다. [8] 이 승리는 보병의 위상이 높아지는 신호였고, 이후 크레시 같은 전투로 기사가 무적이라는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12]

1415년, 장궁과 진흙이 함께 만든 승리

백년전쟁 전반의 상징은 아쟁쿠르입니다. 헨리 5세는 숲으로 둘러싸인 갈아엎은 밭에 병사를 세우고, 유효 사거리가 약 229m인 장궁병을 양옆에 배치했습니다. 숙련된 장궁병은 프랑스군에 큰 피해를 줬고, 진흙탕이 된 땅은 프랑스군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2] 흔히 화살이 갑옷을 꿰뚫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부분은 아래 질문에서 따로 짚습니다.

1453년, 대포가 중세를 끝낸 해

백년전쟁의 마지막 카스티용 전투에서 프랑스는 장 뷔로의 야전 대포를 튼튼한 진지에 배치했습니다. 잉글랜드 지휘관 탤벗이 이 진지로 서둘러 돌격했다가 패해 전사했습니다. [6] 같은 해 동쪽에서는 오스만이 대포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옛 성벽을 뚫고 비잔티움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3]

15~16세기, 대포를 막아 낸 흙과 요새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대포가 가장 튼튼한 돌벽도 부술 수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자 높은 성벽 대신 땅을 파고 흙을 쌓은 낮은 방어 시설이 퍼졌습니다. 1568년 완공된 안트베르펜 요새에는 140만 플로린이 들었습니다. [9] 방어 역시 돈이 드는 기술 경쟁이 된 것입니다.

1916년, 150만 발도 참호를 끝내지 못하다

영국군은 솜 전투 전 일주일 동안 150만 발이 넘는 포탄을 쏟아부으면 독일군이 무너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4] 그러나 방어 시설은 기대만큼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오전 7시 30분 공격에 나선 영국군 보병은 포격의 엄호를 제때 따라가지 못했고, 그 사이 독일군이 참호 속 대피호에서 올라와 사격을 시작했습니다. [10] 결국 첫날 영국군은 19,240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57,470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영국 군대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하루였습니다. [11]

자주 묻는 질문

Q1. 장궁 화살은 기사의 판금 갑옷을 뚫었나요?

대체로 어려웠다는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2mm 두께의 판금은 대부분의 화살을 막을 수 있었고, 팔다리를 가린 얇은 갑옷은 가까운 거리에서 뚫릴 수 있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13] 중세 방식으로 복원한 장궁과 화살로 판금을 쏜 실험에서도 화살은 흠집만 남기고 뚫지 못했습니다. [14] 장궁의 진짜 힘은 한 발의 관통력보다 대열을 흔드는 화살 세례에 있었던 셈입니다.

Q2. 그렇다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위의 장면들에서 승리는 늘 무기, 대형과 훈련, 지형, 그리고 그것을 유지할 돈이 함께 맞아떨어졌을 때 나왔습니다. 새 무기는 출발점일 뿐, 그 무기를 가장 잘 쓰는 조직이 결국 판을 바꿨습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Chaeronea",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Chaeronea

[2]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Agincourt",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Agincourt

[3] Encyclopaedia Britannica, "Fall of Constantinople",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Fall-of-Constantinople-1453

[4] Imperial War Museums, "What Happened During The Battle Of The Somme?", (접속: 2026-09-17),
https://www.iwm.org.uk/history/what-happened-during-the-battle-of-the-somme

[5] History Hit, "How the Macedonian Phalanx Conquered the World", (접속: 2026-09-17),
https://www.historyhit.com/how-the-macedonian-phalanx-conquered-the-world/

[6]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Castillon",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Castillon

[7]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Cynoscephalae",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Cynoscephalae

[8]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the Golden Spurs",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the-Golden-Spurs

[9] Encyclopaedia Britannica, "Bastion (fortification)",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bastion-fortification

[10] National Army Museum, "Battle of the Somme", (접속: 2026-09-17),
https://www.nam.ac.uk/explore/battle-somme

[11] Imperial War Museums, "First Day Of The Battle Of The Somme", (접속: 2026-09-17),
https://www.iwm.org.uk/history/first-world-war/somme/first-day

[12] EBSCO Research Starters, "Battle of Courtrai", (접속: 2026-09-17),
https://www.ebsco.com/research-starters/military-history-and-science/battle-courtrai

[13] arXiv, "The Asian war bow" (1101.1677), (접속: 2026-09-17),
https://arxiv.org/pdf/1101.1677

[14] Tod's Workshop, "Arrows vs Armour – Agincourt Myth Busting", 2019-08-30,
https://todsworkshop.com/blogs/blog/arrows-v-s-armour-agincourt-myth-bu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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