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의 청구서
— 왕의 빚은 어떻게 은행을 무너뜨렸나
작성일 : 2026년 9월 17일
전쟁은 칼보다 돈이 먼저 떨어진다
백년전쟁을 무기와 영웅의 이야기로만 보면 중요한 장면을 놓칩니다. 전쟁은 한꺼번에 막대한 돈이 들어갔고, 꾸준히 걷히는 세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북유럽에는 국채 시장도 발달하지 않아 왕들은 상인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이 글은 잉글랜드 왕의 빚이 피렌체 은행을 흔든 과정, 그리고 프랑스가 전쟁 비용을 세금 제도로 바꿔 간 과정을 따라갑니다. 요즘 금융 뉴스에 나오는 국가 부채, 채무 불이행, 연쇄 부도라는 말이 이미 14세기에 모두 등장합니다.
두 가지 핵심
핵심 ① 세금을 담보로 잡힌 왕의 빚
에드워드 3세는 1330년대부터 피렌체의 페루치 가문에게 처음에는 바르디 가문과 함께, 나중에는 단독으로 큰돈을 빌렸습니다. 대가로 은행은 양모, 현금, 관세와 세금을 받을 권리를 얻었습니다. [1] 오늘날로 치면 나라의 세금 수입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린 셈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걷어도 왕의 금고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많았습니다. 양모 세금은 항구에서 은행 대리인에게 곧바로 넘어갔습니다. 이미 빚을 갚는 데 쓰기로 정해진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5]
돈의 흐름
은행 → 전쟁 자금 대출 → 왕 → 양모·관세 징수권 제공 → 은행
왕은 당장 싸울 돈을 얻고, 은행은 앞으로 걷힐 세금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핵심 ② 한 채무자에 몰린 위험
1338~1339년 전쟁 비용으로 나간 대출은 페루치와 바르디 두 은행의 자금을 모두 바닥냈습니다. [1] 가장 큰 고객 한 명이 흔들리면 은행 전체가 흔들리는 집중 위험이 생긴 것입니다.
다만 "왕이 빚을 안 갚아서 은행이 망했다"는 설명은 단순합니다. 1341년에는 에드워드 3세에게 대출하지 않은 은행들까지 먼저 무너졌고 [6], 경제사학자 에드윈 헌트는 두 은행에 흔히 알려진 규모만큼 빌려줄 자금이 애초에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7] 왕의 채무 불이행은 이미 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불을 붙인 계기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핵심 연표 한눈에 보기
| 시기 | 사건 | 돈의 관점에서 보면 |
| 1330년대 | 페루치·바르디, 에드워드 3세에게 대출 시작 [1] | 양모·관세를 받는 조건 |
| 1338~39 | 전쟁 비용 대출로 두 은행 자금 고갈 [1] | 위험이 한 채무자에게 집중 |
| 1341 | 왕에게 돈을 안 빌려준 은행들도 파산 [6] |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림 |
| 1343 | 페루치 회사 파산, 회수율 37% [2] | 채권자 손실 확정 |
| 1360 | 브레티니 조약, 장 2세 몸값 300만 크라운 [3] | 패전국 프랑스의 청구서 |
| 1439 | 삼부회, 직접세 타유에 동의 [4] | 전쟁 비용을 세금 제도로 |
| 1445 | 상비군 15개 중대 창설 [8] | 월급 받는 왕의 군대 |
| 1453 | 카스티용 승리, 백년전쟁 종결 [9] | 돈을 조직한 쪽의 승리 |
※ 주황색 줄은 이 글의 핵심 장면입니다.
숫자로 보는 왕의 빚
왕의 빚은 얼마였을까 — 추정치마다 다른 크기
| 당대 기록 연대기 작가 빌라니 | 150만 플로린 |
| 후대 연구 역사가 사포리 | 59.4만 |
빌라니는 바르디 90만, 페루치 60만 플로린으로 적었지만 크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사포리는 계산 끝에 약 59만 4천 플로린으로 수정했습니다. [7]
페루치 파산 — 100을 빌려주고 돌려받은 돈
| 37 | 63 손실 |
1343년 파산한 페루치 회사의 채권자 회수율 [2]
숫자는 두 가지를 알려 줍니다. 첫째, 왕의 빚은 기록한 사람에 따라 두 배 넘게 차이 날 만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둘째, 규모가 어떻든 은행이 무너지면 그 손실은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까지 번졌습니다.
전쟁의 청구서, 네 장면으로 보기
① 잉글랜드는 전쟁을 '빚'으로 시작했다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 자금을 피렌체 은행에서 빌렸습니다. 1330년대부터 페루치 가문이 처음에는 바르디 가문과 함께, 나중에는 단독으로 돈을 댔고, 그 대가로 양모와 현금, 관세와 세금 징수권을 받았습니다. [1]
왜 은행에 기댈 수밖에 없었을까요? 전쟁은 한꺼번에 큰돈이 들어 평소 세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 북유럽에는 국채 시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 게다가 걷은 세금조차 왕의 금고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양모 세금은 항구에서 은행 대리인에게 곧바로 넘어갔습니다. [5] 첫 편에서 다룬 보르도 포도주 관세도 에드워드 3세 시기에 재정 목적에 따라 자주 조정됐습니다. [10] 오늘날로 치면 세입을 담보로 잡힌 국가 부채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② 왕의 채무 불이행과 은행의 몰락
1338~1339년의 전쟁 대출로 두 은행의 자금은 바닥났습니다. [1] 왕의 조사관들은 은행이 요구한 금액을 여러 차례 감사하며 크게 깎았고, 최종 인정한 빚마저 끝내 갚지 않았습니다. [7] 피렌체 연대기 작가 빌라니는 왕의 빚을 바르디 90만, 페루치 60만 플로린으로 적었지만 크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343년 페루치 회사가 파산했을 때 채권자들은 37%만 돌려받았습니다. [2]
다만 앞의 핵심 ②에서 짚었듯 왕의 빚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1341년에는 왕에게 한 푼도 빌려주지 않은 은행들까지 먼저 무너졌습니다. [6] 왕의 채무 불이행은 이미 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불을 붙인 성냥에 가까웠습니다.
③ 프랑스는 '왕의 몸값'이라는 청구서를 받았다
프랑스의 부담도 막대했습니다.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장 2세가 포로로 잡혔고, 1360년 조약으로 프랑스는 넓은 영토를 넘기고 금화 300만 크라운의 몸값을 약속했습니다. [3] 장 2세는 프랑스가 감당하기 어려운 몸값을 마련하려고 풀려났고, 대신 인질들이 잉글랜드에 남았습니다. [11]
이런 경험 끝에 프랑스는 전쟁 비용을 제도로 바꿨습니다. 월급을 못 받은 병사들이 농촌을 약탈하는 문제가 이어지자, 1439년 삼부회가 직접세 타유에 동의했고 1445년 샤를 7세는 월급 받는 상비군 9,000명을 만들었습니다. [4] 전쟁 때마다 허락받던 세금을 꾸준히 걷는 세금으로 바꾼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8]
④ 무기와 방어도 결국 돈 싸움이었다
꾸준한 세금과 상비군을 갖춘 프랑스는 장 뷔로의 대포 부대를 앞세워 1453년 카스티용에서 이겼고, 이 승리로 백년전쟁이 끝났습니다. [9] 대포 시대의 방어도 돈이 들었습니다. 1568년 완공된 안트베르펜 요새 한 곳에 140만 플로린이 들었습니다. [12] 에드워드 3세의 빚으로 전해지는 150만 플로린과 비슷한 숫자지만, 200년 넘는 시차가 있어 화폐 가치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백년전쟁 시리즈, 돈이라는 한 줄로 잇기
① 보르도 포도주 편 · 잉글랜드 왕이 가스코뉴를 놓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포도주 무역이었습니다.
② 잔 다르크 편 · 샤를 7세가 지키려 한 왕의 정통성은 곧 세금을 걷고 군대를 유지할 권위였습니다.
③ 전쟁의 승패 편 · 대포와 요새는 돈을 조직할 수 있는 나라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④ 청구서 편 · 빚으로 시작한 쪽과 세금 제도를 세운 쪽의 차이가 전쟁의 끝을 갈랐습니다.
참고자료 | 이 글에 나오는 은행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왕의 빚에 흔들린 가문 은행에서, 나라가 세운 은행으로
| 은행 | 만들어진 때 | 이 글과의 관계 |
| 바르디 은행 피렌체 |
1250년 무렵 성장 | 1250~1345년 유럽의 손꼽히는 금융 세력이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 지원과 피렌체의 루카 전쟁 지원이 겹쳐 1345년 파산했습니다. [13] |
| 페루치 은행 피렌체 |
1275년 무렵 부상 | 유럽 곳곳에 지점을 두고 바르디 다음가는 규모로 컸습니다. [1] 1343년 파산했습니다. [2] |
|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 시에나 |
1472년 | 백년전쟁이 끝나고 19년 뒤, 시에나 공화국의 명령으로 서민 대출 기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영업하는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꼽힙니다. [14] |
| 릭스방크 스웨덴 |
1668년 | 앞선 은행이 왕의 통제 아래 무너지자, 왕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의회가 직접 관리하는 은행으로 세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입니다. [14] |
| 잉글랜드 은행 영국 |
1694년 | 정부의 은행 역할을 맡은 민간 은행으로 출발했고, 주된 목적은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 마련이었습니다. 지금은 영국의 중앙은행입니다. [15] |
※ 중세 가문 은행은 정확한 설립 연도가 남아 있지 않아 '성장한 시기'로 적었습니다.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는 1624년에 지금의 형태로 다시 세워졌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16]
자주 묻는 질문
Q1. 정말 왕의 빚 때문에 은행이 망했나요?
큰 원인 중 하나였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헌트의 연구는 두 은행에 흔히 말하는 규모의 대출을 할 자금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기존 설명의 허점을 짚었습니다. 오히려 은행이 정부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빌려준 돈의 일부를 되찾았을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7]
Q2. 오늘날의 교훈은?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 고객에게 지나치게 많은 돈을 빌려주면 위험이 커진다는 점, 한 곳의 부실이 다른 곳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나라의 힘이 세금을 믿을 만하게 걷는 제도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700년 전의 장부가 지금의 금융 뉴스를 읽는 눈을 길러 줍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Encyclopaedia Britannica(Britannica Money), "Peruzzi Family",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money/Peruzzi-family
[2] The Tontine Coffee-House, "The Financiers of Medieval Florence", 2020-08-17,
https://tontinecoffeehouse.com/2020/08/17/the-financiers-of-medieval-florence/
[3] Encyclopaedia Britannica, "Treaty of Brétigny",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Treaty-of-Bretigny
[4] EBSCO Research Starters, "Charles VII", (접속: 2026-09-17),
https://www.ebsco.com/research-starters/history/charles-vii/
[5] The Hundred Years War, "How did Edward III finance the conflict with France in its initial stages?", 2021-11-25,
https://thehundredyearswar.co.uk/how-did-edward-iii-finance-the-conflict-with-france-in-its-initial-stages/
[6] The Timeless Investor, "The Bardi and Peruzzi Banking Crisis", 2026-01-21,
https://thetimelessinvestor.substack.com/p/the-bardi-and-peruzzi-banking-crisis
[7] Edwin S. Hunt, "A New Look at the Dealings of the Bardi and Peruzzi with Edward III",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Vol.50 No.1, 1990-03,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journal-of-economic-history/article/abs/new-look-at-the-dealings-of-the-bardi-and-peruzzi-with-edward-iii/2AD04842FACDAE9D0A660EDCD72EC097
[8] Musée de l'Armée, "Knights & bombards — Time of reform", (접속: 2026-09-17),
https://www.musee-armee.fr/ExpoChevaliersBombardes/time-of-refom.html
[9] Encyclopaedia Britannica, "Battle of Castillon",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event/Battle-of-Castillon
[10] British History Online, "The wine trade with Gascony", (접속: 2026-09-17),
https://www.british-history.ac.uk/manchester-uni/london-lay-subsidy/1332/pp256-311
[11] Encyclopaedia Britannica, "Treaty of Calais",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topic/Treaty-of-Calais
[12] Encyclopaedia Britannica, "Bastion (fortification)",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bastion-fortification
[13] Encyclopaedia Britannica, "Bardi Family", (접속: 2026-09-17),
https://www.britannica.com/topic/Bardi-family
[14] The Business Standard, "10 oldest operational banks in the world", 2020-11-30,
https://www.tbsnews.net/world/oldest-operational-banks-world-165169
[15] Bank of England, "History", (접속: 2026-09-17),
https://www.bankofengland.co.uk/about/history
[16] Wikipedia, "List of oldest banks in continuous operation", (접속: 2026-09-17),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oldest_banks_in_continuous_operation
